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수·순천 10.19 사건 (문단 편집) == 문화에서 == 소설 [[태백산맥(조정래)|태백산맥]] 초반부에서는 무장봉기를 일으킨 14연대 군인들과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빨치산]]들이 [[벌교]]를 점령한다. 이들은 지주, 경찰, 우익인사 등을 살해하고 공산주의 정책을 실시하나 얼마 되지 않아 국군의 반격으로 산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설을 기반으로 한 [[태백산맥(영화)]]에도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정주영]]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천태산([[차인표]]가 분함)이 이 사건 때문에 죽을 뻔한다.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그를 부역자라며 고발한 것. 그 때문에 그는 총살대 앞에까지 서지만 겨우 신분이 확인되어 목숨을 건진다. 결국 신고자는 반좌율로 인해 군인들한테 잡혀간다. [[손양원]] 목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에서도 이 사건이 나온다. 신준영 감독의 [[동백(영화)]]는 본 사건을 다루었다. 여순사건 당시 아버지를 잃은 노인 황순철과 가해자의 딸 장연실의 세대를 이어온 악연을 풀기 위한 갈등과 복수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담았다. 북한의 시인 조기천은 이 사건을 주제로 1948년 「항쟁의 려수」라는 서정시를 썼고, 민병균의 서사시 「분노의 서」에서도 이 사건을 언급한다. 물론 북한문학인만큼 [[대한민국]]에 대한 비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거의 최초로 시도된 문학적 형상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youtube(ztCC5JAXP5c)] [[전라남도]] [[구례군]]에는 <산동애가>라는 노래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노래가 본 사건과 연관이 있다. 구례군 산동면에 살고 있는 19살 소녀 백순례는 둘째 오빠가 사건 관련자로 처형되고 셋째 오빠까지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자처하여 오빠 대신 경찰에 끌려가 살해됐다. 경찰에 의해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가 이것이었다고 한다.[* 그녀 이외의 형제자매들도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첫째 오빠 백남순은 일제 징용에 희생됐고 둘째 오빠 백남승은 사건 관련자로 처형당했으며 셋째 오빠 백남극은 누이의 희생에 따른 죄책감과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죽었다. 언니 백순남도 6.25 때 행방불명됐다. 무엇보다 다섯 형제자매를 모두 생전에 떠나보낸 어머니 고선옥은 회한과 고통의 삶을 보내야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J7-tI8kOw|산동애가에 얽힌 슬픈 가족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63536|#]]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에 나는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갈 길마다 눈물 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 [youtube(jfV9n1avkqc)] 당시 대표적인 유명가수 중 하나인 [[남인수]]는 사건이 일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1949년에 <여수야화>라는 곡을 발표하였다. 이 곡은 김초향 작사에 이봉룡 작곡으로 여순사건으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은 한 가정의 모습을 구슬프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고 곡이 발표된지 한달만에 이 곡을 금지곡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실상 대한민국 역사상 공식기록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금지곡이라 한다. 다만 60년 이후 금지곡 목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제2공화국 출범이후에 금지곡에서 풀린 걸로 추정된다. ||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 우리집 선돌아범 어데로 갔나요 창없는 빈집속에 달빛이 새여들면 철없는 새끼들은 웃고만 있네 가슴을 파고드는 저녁바람아 북청간 딸 소식을 전해주려므나 에미는 이모양이 되였다마는 우리 딸 살림살인 흐벅지드냐 왜놈이 물러갈땐 조용하드니 오늘에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 의견이 안맞으면 따지고 살지 우리집 태운사람 얼골 좀 보자 || [youtube(60XsgBZnnro)] 노래 <여수블루스>도 여순사건의 아픔을 담고 있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는 당시 대놓고 불러지지 못하고 오로지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다. 여순사건 전후로 작곡된 건 분명하지만 그외 곡의 정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작사가 강석오에 작곡가 임종하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은 듯하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NuKM&articleno=401&categoryId=0&totalcnt=306|구전가요 여수블루스에 얽힌 일화]] ||여수는 항구였다 아- 철썩철썩 파도치는 꽃피는 항구 안개속의 기적소리 옛님을 싣고 어디로 흘러가나 어디로 흘러가나 재만 남은 이 거리에 부슬부슬 궂은 비만 내리네 여수는 항구였다 아- 마도로스 꿈을 꾸는 남쪽의 항구 어-버이 혼이 우는 빈터에 서서 옛날을 불러 봐도 옛날을 불러 봐도 재만 남은 이 거리에 부슬부슬 궂은 비만 내리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